일반적인 성공담을 읽을 적에는, 큰 꿈을 꾸고 싶게 만드는 동기 부여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크래프톤 웨이를 읽고 나서는 어째서인지 일을 하고 싶게 만드는 동력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책 어디에도 가치관으로 삼을 만한 거창한 한 줄의 크래프톤 웨이는 요약되어있지 않았다. 그들의 길은 멋지거나 특별하지 않았다. 너저분하고, 지루하며, 불확실했다. 버티고 버티어 어느날 성공과 만났더라는 담담한 일기와 같았다.
오랜만에 서점에 간 날, 크래프톤이 코스피에 상장했다는 뉴스가 떠올랐다. 경영 카테고리의 책을 읽어보는 것은 아마 처음이지 싶은데, 게임 산업 종사자로서의 알 수 없는 의무감에 이끌려 책을 구매했다. 배틀그라운드는 적성에 맞지 않아 몇 번 플레이해 보지 않았고, 따라서 크래프톤이 어떤 회사인지도 잘 알지 못했다. 그냥 막연히 요즘 잘나가는 회사? 우리 팀에 있었던 개발자가 이직했다는 회사?
독후감을 쓰는 것이 워낙 오랜만이라 어떤 방식의 기승전결로 글을 이어나가야 할지 막연하다. 재미와 감동으로 나누어 말하면 좋을까? 우선 재밌는 부분들이 꽤 있었다. 삼국지의 도원결의마냥 처음 회사를 꾸릴 때의 설렘, 테라 실패(?)의 징후가 회사를 덮을 때의 긴장감, 현재 CEO인 김창한 님의 주인공스러운 등장씬 등등.
다만, 전체적으로 책에 깔려있는 배경은 현실적이고 신경질적이다. 책을 읽는 독자로서는 그런 감정들이 조금 피곤하기도 했는데, 경영의 과정에서 주체들이 겪는 스트레스를 간접적으로 체험해 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교훈이나 결론을 정리한 그런 부류의 책은 아니다. 길게 풀어쓴 스토리에 은연중 녹아있는 메세지들이 자연스레 흡수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그런지 책에 대한 감상도 모두 다른 것 같다. 책을 덮은 시점, 나는 왕도가 없는 게임 산업의 불확실성에 질려 크래프톤을 매도했고, 내 친구는 한 방이면 된다는 게임 산업의 흥행성에 취해 크래프톤을 매수했다.
앞서 말했듯 요약할 내용이 있는 책은 아니다. 개인적인 감상이 중요할 터인데. 나라는 존재를 지식 산업의 용병으로서 분류 할 수 있음을 배웠고, 막연했던 커리어의 끝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있기를 꿈꾸기로 정하였다. 물론 다음 책을 덮을 때 즈음에는 또 다른 멋있는 단어가 나의 도착지를 취할 수 있겠지만… 내가 책에서 취해버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개념을 정리해 보았다.
이것은 김창한님이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혼란스러워하던 브랜든 그릭에게 보냈던 편지의 내용이다.
- 1 - CD(Creative Director)는 제품의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 2 - 비전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선 비전을 구현하는 사람을 설득해야 한다.
- 3 - 비전은 모호하지 않아야 한다.
편지 안에는 CD에 대한 여러 정의와 제안들이 있었고, 그중 가장 공감 가는 세 가지를 가져와보았다. 나라는 사람이 실무자로서 가지고 있는 장점을 생각해 보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조금 더 빠르게 실행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 그런 역량을 키우고 발휘하여 쌓고 싶었던 커리어를 김창한이라는 사람이 대필해 놓은 느낌을 받았다. 이 편지를 읽고 마치 내가 책 속의 주인공이 된 양 상상해보았다. 내가 하는 일의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비전을 세우고 싶다. 그 비전을 달성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함께하는 작업자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